600년 역사 담은 돌담길, 고창읍성에서 만나는 조선의 하루

사진=대한민국 구석구석

전라북도 고창군의 중심, 조용한 읍내 한가운데 고창읍성(高敞邑城)이 우뚝 서 있다. 마을을 품고 도는 듯한 이 석성은 단순한 옛 성곽이 아니라, 민속과 전설, 공동체 정신이 깃든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6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이 성은 오늘날까지도 고창 사람들의 삶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답성놀이’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전라좌우도 19개 군현이 함께 쌓은 돌성

사진=한국관광공사

고창읍성의 축성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었지만, 현재는 조선 세종 32년(1450)부터 단종 원년(1453) 사이에 전라좌우도 19개 군·현이 구간을 나누어 분담해 쌓은 것으로 확인된다.

성벽 곳곳에는 당시 축성에 참여했던 지역명과 인물 이름이 각자(刻字)로 새겨져 있다. ‘무장시면(茂長始面)’이나 ‘무장종(茂長綜)’ 등은 무장현이 축성에 직접 참여했음을 보여주며, 동문옹성 성벽에 남은 ‘계유소축감동송지민(癸酉所築監董宋芝玟)’이라는 명문은 이 성이 계유년, 곧 1453년에 축조되었음을 확증해준다.

문헌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조선 성종대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이를 보완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고창현 성곽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이로써 고창읍성은 방어 목적의 전략 요새이자, 지역 공동체가 협력해 만들어낸 조선 중기의 대표 석성임이 명백하다.


1년에 3번, 머리에 돌을 이고 성을 도는 전통

사진=한국관광공사

고창읍성에는 병이 낫고 수명이 길어진다는 신앙이 깃든 전통 행사가 전해진다. 바로 ‘답성놀이’ 또는 ‘성밟기’라 불리는 민속행사다. 예로부터 이곳 사람들은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도는 독특한 풍습을 이어왔다.

  • 한 바퀴: 다릿병이 낫는다
  • 두 바퀴: 무병장수를 얻는다
  • 세 바퀴: 극락에 간다

이 성을 돌 때는 반드시 손바닥만 한 돌을 머리에 이고, 정해진 지점에 돌을 쌓아두는 것이 관습이다. 윤달, 특히 윤삼월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가 가장 효과가 좋다고 여겨져 이날에는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려 성을 돌며 풍물패, 전통공연이 곁들여진 행사도 펼쳐진다.

단순한 민속놀이를 넘어, 성 밟기는 겨우내 부드러워진 성벽을 다지는 공동체적 행위였다. 돌을 머리에 이고 걷는 행위는 체중을 실어 성벽을 단단하게 눌러주려는 고안에서 비롯된 실용성과 상징성이 동시에 담겨 있다.


사적 제145호,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산책길

사진=한국관광공사

전체 둘레 약 1.7km의 고창읍성은 생각보다 걷기 쉬운 코스다. 성 위로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봄이면 벚꽃과 철쭉이 피고, 여름엔 녹음이, 가을에는 단풍이 곱게 물든다.

성 안에는 옛 관아 건물과 동헌, 객사, 향청 등이 복원되어 있어 조선시대 군현 행정체계를 엿볼 수 있고, 전통혼례 체험이나 역사문화 해설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관람 정보

  • 위치: 전북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로 1
  • 지정: 사적 제145호 (1965년 4월 1일 지정)
  • 관람시간: 05:00~22:00 (연중무휴)
  • 입장료:
    • 어른 3,000원 / 청소년·군인 2,000원 / 어린이 1,500원
    • 만 65세 이상, 만 6세 이하, 장애인 등 무료 (신분증 지참)
  • 주차: 가능 (전용 주차장 있음)
  • 문의: 관광안내소 063-560-8055
  • 홈페이지: 고창 문화관광

고창읍성 근처 함께 가볼 만한 곳

사진=한국관광공사
  • 판소리박물관: 신재효 선생의 고장 고창,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판소리를 테마로 한 박물관
  • 고창 청보리밭 축제장: 5월 초, 성 바깥 논에 펼쳐지는 초록의 감성 풍경
  • 고인돌박물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창 고인돌 유적의 전시와 체험

고창읍성에서 머무는 하루

사진=한국관광공사

고창읍성은 단순히 ‘보러 가는’ 장소가 아니다. 천천히 걸으며, 돌을 밟고, 전설을 떠올리고, 역사와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감각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는 공간이다. 때마침 윤달이거나, 전통행사 기간이라면 더욱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다.

6월이면 고창읍성 성벽 너머로 찔레꽃이 하얗게 피고, 가을이면 억새와 단풍이 뒤엉킨다. 사계절 어느 때나 걷기 좋은 이곳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우리 고유의 성곽이다.


고창읍성을 걸을 때, 꼭 기억해보자. “한 바퀴는 건강, 두 바퀴는 장수, 세 바퀴는 극락.” 성을 밟는 순간, 당신도 이 마을의 오래된 전설에 한 줄을 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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